2020. 12. 26 — 2021. 1. 26

화요일 - 일요일 12:00 ~ 18:00
월요일 휴관

전시작가: 허니듀(a.k.a Dew Kim)
기획: 임진호(out_sight)
포스터 디자인: Downleit 박재영 X 차지연
촬영: CJYARTSTUDIO
후원: 서울문화재단, 서울특별시
사전예약: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461561
Huh, Need-you Solo Show

Tue-Sun 12pm ~ 6pm
Monday OFF

Curated by Jinho Lim(out_sight)
Poster designed by Downleit Jaeyoung Park X Jiyoun Cha
Photo by CJYARTSTUDIO
Supported by SFAC,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본문


포르노토피아에서  

글/ 임진호 



부정한 것이 여기 있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지 말것. 그것이 금기이다.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것,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혐오의 감정을 쏟아 내게 하는 것, 금기시 된 것들을 일상적으로 마주치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금기는 현실을 지탱하는 안전장치와도 같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뒤집어져 감춰져 있던 것들을 드러내고 만다. 드러난 것의 경악스러움은 종종 생리적으로 (구토로, 흐느낌으로) 엄습하기도 하며 알 수 없는 곳에서 유래하는 죄의식에 우리의 고개를 돌리게 하기도 한다. 허나 그것은 결코 영영 사라지지는 않기에, 다시 누군가는 감춰져 있던 그것을 드러내고야 만다. 그러므로 금기가 있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억압된 욕망이 있을 것이다.​1 그것은 감춰진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 또 감추지 않으면 이내 드러나고야 마는 욕망이다. 남몰래 그것을 뒤집어 잃어버린 무언가를 마주하는 상상을 해 본 적 있는가. 


낙원 (금기를 작동시키는 질서) 의 안락함과 황야 (위반에 따르는 추방의 형벌) 의 공포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한 금기는 대체로 금기인 채 그 곳에 있어 왔다. ‘살인하지 말라’고 노래하는 신의 축복을 받은 군대 (십자군)와도 같이2, 질서는 금기가 저지하는 부정한 욕망의 폭력을 담보로하여 자기에의 복종을 강요하는 폭력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이성적인 사회의 가장 이타적인 질서라 하더라도, 그것은 이상을 위반했을 때 가해질 잔인한 처벌 (사회 바깥으로의 추방 또는 신체적 형벌) 을 통해 작동하는 무자비한 계약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고 있다. 질서는 현실을 지탱하지만, 낙원의 인간은 질서에 종속된 채로 살아야 한다. 안락함의 바깥에는 공포의 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하자면 현실에서의 안락한 삶은 욕망을 소외시키는 질서의 폭정에 순응하는 삶과 다름 아닐 것이다. (만약 그 욕망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일부로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질서는 우리의 욕망을 소외시키는 것 보다는 욕망을 부추기는데 더 관심이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순응할 것을 강요하는 채찍대신, 순응하는지도 모르는 채 순응하게 하는 당근을 손에 쥔 질서이다. 이 최신의 낙원에서는 쾌락을 향유하고 또 상상할 수 없던 욕망들을 생산하는 자가 모범 시민이다. 이제 욕망의 생산이 궁극의 생산이기 때문이다.3 금지된 욕망을 찾아 굳이 금기의 선을 넘지 않아도, 상상할 수조차 없던 욕망들이 질서 안에서 만들어진다. 얇디 얇은 공포의 시뮬라크라들이 (감옥 체험, 폐허 투어, bdsm 캠프) 황야의 고통조차 더 많은 자극(자본)으로 향유 될 수 있게 만든다. 낙원의 바깥을 상상하는 은밀하고 어두운 (혹은 숭고하고 성스러운) 낭만의 자리가 사라진다. 더 많은 쾌락을 경작할 영토를 부지런히 넓혀 나가지 않는 것이 손해 (죄악) 이다. 더이상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형벌에는 원죄의 죄의식이 따르지 않는 것 처럼 자극을 탐닉하는데 분주하다. 쾌락을 따르는 원죄의 무게도, 고통이 짊어지는 십자가의 숭고한 무게도 더이상 알지 못하게 된 듯 하다. 


낙원의 경계에는 채굴꾼들이 득실거린다. 그곳에서 고통과 쾌락이란 자극의 수치로 환원되어 부드러운 자극과 거친 자극, 달콤한 자극과 서늘한 자극, 안락한 자극과 혈관을 팽창시키는 자극으로 존재한다. 이제 고통은 감내하여 이겨내거나 회피하고 배제할 무엇이 아니라 익스트림, 스릴, 호러, 슬랩스틱으로 가용 할 기쁨이 되어버렸다. 극단적인 긍정성의 사회 속에서 사라져 버린 고통은 해병대 캠프, 오지 체험, 생존 리얼리티 TV 쇼 등의 형태로 체험된다. 고통과 쾌락의 에로스는 말하여질 수 없는 깊은 무엇이 아니라 가죽 의상과 채찍, 수갑과 정조대의 키트로 포장되어 얇디 얇은 쾌락의 경제에 수용된다.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잠언4은, 이제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기쁘게 만들 것이라는 광고문구로 전용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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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반지하의 공간에는 허니듀의 환상이 만들어낸 가학과 피학의 지하감옥이 있다. 외설스러움과 신성함이 도치되고 마조히스트의 굴욕조차 모든 긍정성의 쾌락으로 전이된 이곳은 당근을 든 신과 타락한 뱀의 낙원이다. 검은 장치에 구속된 노예는 두 손으로 엉덩이를 부여잡아 항문을 열어젖힌 채 당당하게 금기의 쾌락을 향유한다. 대변이 아닌 말을 배설하는 항문이 공중 감옥에 매달려 있다. 지나치게 똘똘한 이 구멍은 항문에 대한 억압을 중단하고 항문을 통해 궁극의 쾌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혁명에 대해 논설한다. 논리적인 항문의 변에는 전통적인 금기로서의 외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논리적인 것은 질서의 성품이다). 성기와 유두와 구강과 항문과 손과 발은 그것을 압박하는 도구들에 연결되어 인간으로서의 육체 (인간성의 무게) 를 배반한 채 쇠창살 곳곳에 물신으로 피어난다. 


지하감옥의 설계자는 드디어 지난 한 해동안 스스로 쌓아 올렸던 환상의 고성 (똥꼬충의 유토피아)5 를 부수고 나와 순교자로서, 샤먼으로서의 사명을 버리고 진정한 무게 없음으로 비상하였다. 성스러운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현대의 아브젝시옹은 곤충 성기의 돌기들을 떼어내어 궁극의 딜도를 만들어낸 동시대 예술6과, 축축한 그곳에 대한 적나라한 시를 읊으며 엉덩이를 흔드는 래퍼의 뮤직비디오7와 함께 포르노토피아의 지평에서 만난다. 포르노토피아는 바로 눈과 귀와 입과 성기와 내분비계와 신경계가 모두 오르가즘의 에너지 생산을 위해 쾌락기계 (미디어, 포르노, 비아그라, 콘돔 등등) 에 연결된 포스트휴먼8의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이다9. 여기엔 상실된 것에 대한 비극도, 상실할 것에 대한 공포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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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사용, 2020, 스테인레스 강, 스티로폼, 레진, 실리콘, LED 조명, 가변크기
The Use of The Body, 2020, stainless steel, styrofoam, resin, silicon, LED lighting, dimension variable


이제 감옥의 출구 앞에서, 손 안에 빨간약과 파란약을 상상해보자. 파란약을 집어들 당신은 감옥으로 돌아가 포르노토피아의 꿈에서 깨지 않을 것이다. 빨간약을 선택한 당신은 이제 문을 열고 텅 빈 무대의 뒤편으로 들어갈 것이다. 컴컴한 주차장에는 눈과 손과 구강과 성기와 항문을 질척하게 감싸던 낙원의 빛이 사라졌다. 그곳은 다시 자비 없는 신의 질서가 쾌락의 한계를 시험하는 낙원 이전의 낙원이다. 암흑 속에서 이 마조히스트는 벌거벗겨진 채 영원한 추방의 공포를 마주하였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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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모니, 2020, 헤드라이트, 스피커, 인체감지센서, 사운드, 8'20", 가변크기
Ceremony, 2020, automotive headlamps, speakers, human body detector, sound work, 8'20", dimension variable

 

역할도, 계약도, 예측 가능한 무엇도 없이 한 남자에 이끌려 차 트렁크에 갇히게 되었던 어느 밤, 그는 자기 이름도 직업도 가족도 제도의 안전망도 잃어버린 채 황야에 홀로 선 존재의 극한 공포를 경험하였다. 적어도 그날 밤 만큼은, 그는 낙원의 경계 밖에서 자기를 마주하였던 것이다. 그 사막에서 그는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의 섹스 플레이 속 역할극에 뒤로 숨겨져 있던 자신의 진정한 환상 (영원히 속박되어 버리는 것, 주체성을 상실한 오브젝트로서 존재하는 것) 을 공포와 함께 마주하였고, 그 환상이, 금기를 쾌락의 작은 도구로 둔갑시키는 안전한 유희의 구조 바깥에서, 진짜 폭력으로 경험되었을 때 그동안 맛본 적 없는 극단적인 희열을 경험하였다. 그는 돌아갈 수 없는 자기의 자리, 돌아갈 수 없는 향락의 낙원, 돌아갈 수 없는 미래, 돌아갈 수 없는 자유... 역설적으로 이  모든 가능성들이 차단되었다고 여겨졌던 그 순간 숨겨진 모든 몸의 감각들이 살아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후, 그날의 감각의 기억을 더듬으며, 금기의 불가능성 뒤로 한껏 부풀은 쾌락의 가능성을 그리워하며, 그는 아마도 질서의 내부와 외부를 다시 더듬었을 것이다. 얇디 얇은 무한 쾌락의 위에는 더 큰 위반의 쾌락이, 더 큰 공포 다음에는 더 많은 쾌락이 있음을 처절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돌아온 당신에게 다시 묻는다. 남몰래 금기를 뒤집고 황야로 나아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마주하는 것을 상상하고 있는가. 모두가 빨간약을 집어삼킬 필요는 없다.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는 포르노토피아의 질서는 이미 예측할 수 있는 욕망과 상상할 수 없었던 영역의 욕망까지도 안전하고 안락한 유토피아에서 향유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한의 공포와 그것을 대면 했을때의 숭고조차 여기, 우리가 제공하는 숭고의 유사체험 (제도적 지원 속에서 안전하게 제작된 황야의 시뮬라크라) 안에서 잘 짜여진 신화적 이야기로서 경험할 수 있지 않은가. 


경이로움을 맞이하는 것에는 쾌락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쾌락일지 고통일지 쾌락과 고통조차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일지 아무도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끊임없이 금기를 신비롭게 만드는 비결이고 금기의 위반이 던지는 본질적 유혹이며 모든 표피 속에 숨겨진 내면의 진실이다. 그런 연유로 경계를 서성이는 당신은 종종 그 위반의 상상을 타고 금지된 심연을 남몰래 비행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황량한 현실의 사막에서 보상의 계단을 오르다 말라붙은 미라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계속 위반의 꿈을 꾸어야 하는 지도 모른다. 그 선택의 가능성은 질서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보상이며 현실의 안락함을 빛나게 만드는 필연적 어둠이기 때문이다.



포기가 클 수록 그 대가도 크며 또 확실하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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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 들뢰즈 <매저키즘> ‘프로이트는 본능의 충족을 포기하는 것이 양심의 산물이 아니라 반대로 그러한 포기에서 양심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그 역설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 라깡의 말을 빌리자면, 법이란 억압된 욕망과 같은 것이다.’ (이강훈 역, p 95)

 조르주 바타유 <애로티시즘> ‘금기에 대한 언급이 불편한 이유는 금기 대상의 불안정성 때문만이 아니라 비논리성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대상에 대한 반대 명제가 경우가 결코 없다. 위반이 불가능한 금기도 없다. 어떤 때는 위반이 허용되며, 어떤 때는 위반이 처방전으로 제시되기조차 한다. "살인하지 말라.” 라는 엄숙한 계명을 생각하면 우리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축복받은 군대와 찬양의 신이 동시에 그렇게 노래한다’ (조한경 역, p71) 

 미처 자각하지 못한 욕망을 인지하고 구체화시키는 AI의 맞춤형 광고는 욕망의 잠재적 가능태를 끊임없이 경제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 생산성의 벌크를 극대화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중 <잠언과 화살> 의 제 8번째 잠언 

 듀킴 Why Did Ishtar Go To The Underworld?, Kiss of Chaos, Fire and Faggot, Latrinxia: A New Utopia 등 

 Joey Holder The Evolution of the Spermalege 

Cardi B WAP

 20세기 중반 이래 우리는 이 포스트의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명칭의 개정이 필요하다.

Beatrice Preciado Pornotopia 

10 질 들뢰즈 <매저키즘>


Huh, Need-you Solo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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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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